메리 돌로레스 수녀

메리 돌로레스 Mary Dolores 수녀

(이전 메리 패드라익 Mary Padraic 수녀)                  ND 4688                    PDF Download

돌로레스 앤 지블린 Dolores Ann Giblin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7년 6월 4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57년 8월 17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22년 4월 23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22년 4월 28일                 켄터키 커빙턴

돌로레스는 죠지와 루시(브리거) 지블린에게서 태어난 세째이자 막내 아이였다. 돌로레스에게는 오빠인 폴과 언니 리타, 이복 형제 리차드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년기는 오하이오 신시내티 근교의 카테이지에서 보냈다. 이곳의 성 챨스 학교에서 노틀담 수녀들을 처음 만나 일찌기 수도 생활에 대한 끌림을 체험했다.

천사들의 모후 고등학교에서 2년간을 보낸 후 노틀담 아스피랑 학교에 입학했고 켄터키 커빙턴의 노틀담 아카데미로 옮겨왔다. 그리고 1955년 2월 2일에 입회했다. 신시내티 에지클리프 대학에서 인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노던 켄터키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패드라익 수녀라 불렸던 수녀는 초등부에서 10년을, 켄터키 알렉산드리아의 비숍 브로사르 고등학교에서 4년을 가르쳤지만 대부분의 사도직 생활은 미술, 역사, 사회학 교사로서30년, 문서실 담당으로서 10년간 일했던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졌다. 학구적, 영적 성장을 추구하여 러시아와 인도, 엘살바도르를 여행했다.

1990년, 세례명인 돌로레스로 돌아왔다. 교실 밖에서는 중요한 구제활동에 관여했다. 수녀는 성 죠셉 하이츠의 여성 피정 팀을 공동으로 이끌었다. 엑소더스라고 불리며 우울증과 자살을 예방하는데 중점을 두는 경청 사도직인 교정 사도직에 참여하기도 했다. 수녀는 수감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지원 그룹을 시작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뿐만아니라 NDA 동창회 사무소에서 일했으며 동창회 소식지를 위해 흥미로운 블로그를 작성했다.

메리 돌로레스 수녀는 스스로 감사하고 진지하며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수녀들은 유머를 강조하고 극적인 동작에 대한 즉흥성을 덧붙이며 그러한 자질을 확인하곤 했다. 수녀의 재담과 낭송은 수녀들을 한껏 웃게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동료들은 수녀가 깊은 기도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께 대단히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도 공동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수녀는 존 폴리의 노래를 인용했다. “당신께서는 제게 훌륭한 동지들을 주십니다…”

건강이 악화되자 메리 돌로레스 수녀는 2008년에 성 요셉 하이츠로 이전했고, 곧 요양동으로 옮겨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이 줄었지만 눈과 미소로써 소통하곤 했다. 둘 다 수용과 평화를 보여주었다. 수녀는 2022년 4월 23일,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떠났다.

메리 돌로레스 수녀가 이제는 좋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평화로 감싸여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