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캐틀린 수녀

메리 캐틀린 수녀 (Sister Mary Kathelyn)         ND 4064            PDF Download
돌로레스 메리 프리츠 (Dolores Mary Fritz)

미국, 켄터키 커빙턴 티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1924년 12월 20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1948년 8월 11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5년 11월 10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5년 11월 13일                  켄터키 커빙턴

Kathelyn돌로레스 프리츠는 1924년 12월 20일에 스티븐과 안나 프리츠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1명의 자녀 중 둘 째였다. 가족은 유대가 깊고 사랑이 넘쳤다고 전해진다. 돌로레스는 언제나 아기들을 돌보는 “엄마의 도우미”로 알려져 있었다. 주일이면 동생들에게 자주 전차를 태워주곤 했다. 심지어 다른 가정에서 심한 호흡 질환을 가진 큰아들도 도와주었다.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 그 가족에게 그들의 아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알렸다. 그는 후에 계속 가톨릭 학교에 다녔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돌로레스는 7학년이 되었을 때 수도 성소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 요한 학교에서 자신을 가르치던 수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돌로레스는 노틀담 수녀들의 삶에서 행복과 단순함과 일치를 보았다. 부모님은 이 사랑하는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딸의 결정에 놀라지 않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언제나 예수님을 신뢰하라는 자신들의 가르침으로 지지해 주었다. 누구든 이 가정에 깃든 강한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다. 수녀에게는 노틀담 수녀가 된 두 명의 자매, 메리 앤 아델 수녀와 메리 스테파니 수녀가 있다. 모두 수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린이에 대한 수녀의 사랑은 성 요셉 고아원에서 보모로 지내던 첫 사도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얼마 후에는 재봉과 집안일을 도우며 유치원에서 보조하고 본원 사제관도 돌보는 소임을 받았다. 수녀는 곧 세탁실과 집안 살림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4년에는 성 챨스 양로원에서 세탁과 살림을 돕도록 파견되어 1981년까지 머물렀다. 그런 다음에는 5년 동안 노틀담 아카데미의 학생 협력 프로그램을 감독했다. 캐틀린 수녀는 1992년 본원으로 돌아와 손님방을 돌보는 일부터 침대보 보관실을 돕는 일 등 다양한 사도직에 임했다. 2012년에는 삶의 노년을 즐기기 위해 루르드 홀 케어 센터에 들어갔다.

캐틀린 수녀는 항상, 특히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미소를 띠어 주었다. 프리츠 가는 수녀의 삶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수녀와 스테파니 수녀를 자주 방문하곤 했다. 캐틀린 수녀는 가족들에 대한 여러 가지 행복한 추억과 일화를 나누어 주었다. 수녀가 사랑의 하느님의 품에 들 때 가족들이 수녀의 곁에 머물렀던 일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제 수녀가 나머지 가족들과 친구들과 수녀들과 재결합하기를 빈다.

메리 캐틀린 수녀가 자신이 평생 헌신해 온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를. 그분의 손 안에서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