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레아 수녀

메리 레아 Mary Lea 수녀                      ND 4650                        PDF Download

(이전 메리 버나뎃 Mary Bernadette 수녀)

메리 레아 파울루치 Mary Lea Paolucci

미국, 켄터키 커빙턴, 티없으신 성모성심 관구

출 생                1933년 3월 9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1953년 8월 25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8년 5월 30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8년 6월 2일                      켄터키 커빙턴

메리 레아 파울루치 수녀(이전 메리 버나뎃 수녀)는 1933년 3월 9일에 태어났다. 메리와 토니 파울루치의 다섯 자녀 중 맏이였다. 그들의 가정은 레아에게 기도하는 법과 모든 이들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메리 레아는 성 스티븐 학교와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녔다.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니던 4년간의 시간이 자신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었다고 느꼈다. 1951년 8월 8일,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고 1953년 8월 25일 첫 서원을 발했다.

메리 레아 수녀는 비숍 브로사트 고등학교, 노틀담 아카데미, 토마스 모어 대학에서 긴 교직 경력을 즐겼다. 과학과 수학 과목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덴스의 프로비덴스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수녀는 교사이자 교장으로 렉싱턴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다음 사도직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수녀는 토마스 모어 대학의 계속적 교육부서에서 성인들을 가르치고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1995년에 켄터키 북부로 돌아갔지만 성 베드로 클레이버 성당에서 사목 담당이 되라고 켄터키 렉싱턴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아주 최근에는 노틀담 수녀회 커빙턴 관구 JPIC 코디네이터로 봉사했다.

메리 레아 수녀는 낯선 이는 절대로 알지 못했기에 친한 친구들이 많았다. 수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수고하고 지친 이들은 나에게 오라…” 난민, 이주민, 인신매매 희생자, 소외된 이들 등, 현대 세계에는 그런 이들이 너무도 많은데 레아 수녀는 그들 모두에 대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수녀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전국적 연합 주도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이는 수녀의 삶의 바탕이자 초석이었다.

메리 레아 수녀는 6월 3일 주일에 65년 경축을 맞이할 차례였다. 65년간 내내 수녀는 가족과 동료 수녀들과 사도직 동료들과 자신이 가르쳤던 많은 학생들로 인해 풍성한 축복과 지지를 받았다고 느꼈다. 수녀에게는 좋으신 하느님의 좋으심이 분명했다. 부디 메리 레아 수녀가 사랑하는 이와 계속해서 함께 걸으며 우리 모두를 위해 그 길을 이끌어주기를.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