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셰일라 수녀   

메리 셰일라 Mary Sheila 수녀                               ND 4974                                PDF Download

(이전 메리 라 티어 Mary La Tier 수녀)

셰일라 제인 페이 Sheila Jane FAY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3년 2월 24일           아이오와 워털루
서 원:          1958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레스
사 망:          2020년 9월 18일           타우젠드 옥스, 노틀담 센터

윌리암과 에바 페이의 맏딸이었던 메리 셰일라 수녀는 1933년 2월 24일에 아이오와 워털루에서 태어났다. 1936년,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3년 후인 1939년에는 메이우드로 이주했다. 셰일라와 두 남동생은 세 자녀 모두에게 고등학교를 통해 가톨릭 교육을 제공한 부모를 둔 복을 누렸다. 셰일라는 티없으신 성심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22세에는 수학과 학사 학위를 받았고 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수도 성소를 두고 기도했다.

1955년 로스 엔젤레스  티없으신 성심 대학을 졸업한 이후 메이우드 리마의 성녀 로즈 학교에서 초등학교 학생일때 알게 되었던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다. 셰일라는 메리 라 티어 수녀라는 이름을 받으며 수련자로서 착복했다. 나중에 자신의 세례명인 셰일라로 돌아갔다.

수녀는 44년간의 중등 교육에 임하면서 관구의 모든 네 개의 고등학교에서 교사, 상담사, 행정 담당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는 이력을 지녔다. 1996년에는 폴란드에서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의 도움으로 젊은 수녀들의 무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며 여름을 보냈다. 또한 15년간은 맹인들과 난독증을 지닌 이들을 위한 녹음 작업에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자원했다. 사도직이 매주 헐리우드에 있는 스튜디오로 긴 통근시간을 수반했지만 이를 두고 수녀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내게 몹시 중요했다.”

메리 셰일라 수녀는 독서와 여행을 아주 좋아했다. 1977년에는 나뮤르로 수녀회간 순례를 했고, 후에 로마로 수녀회 순례에 참여했다. 보다 최근에는 페이 가족이 “네 째 딸”로 여기는 르네 테데스코와 함께 “로드 트립”을 떠나 미 원주민 지역과 사우스 다코타의 국립 공원, 유타, 아리조나를 방문했다.

수녀는 특히 두 남동생과 짐의 세 딸들과 가까웠다. 조카들에게 그들의 부친과 삼촌에 대한 기억을 담은 전자 메일을 보내는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수녀가 가족 전승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었다.

메리 셰일라 수녀가 수녀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겨졌던 자질은 아마 “경청하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수녀는 각 수녀들에게 온전히 귀를 쥐울여 주며 현명한 조언을 해 주곤 했다. 자기들이 나누는 바가 무엇이든 비밀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각자 지지와 사랑받은 느낌을 가지고 자리를 떴다.  메리 셰일라 수녀는 진정 “지혜의 여인”이었다.

메리 셰일라 수녀는 노틀담 센터에서 공동체 봉사와 기도를 하며 생의 마지막 몇 년간을 지냈다. 그리고 2020년 9월 18일, 이른 아침에 매우 평화롭게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떠났다.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