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테레즈 수녀 

메리 테레즈 Mary Therese 수녀                     ND 4494                        PDF Download

(이전 메리 진 테레즈 Mary Jean Therese 수녀)

메리 제인 커스테인 Mary Jane KIRSTEIN

미국,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신비로운 장미 관구

출 생:          1930년 10월 11일     일리노이 시카고
서 원:          1950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0년 4월 7일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로스 로블스 병원

기도는 천국으로 향하는 단순한 눈길로서, 나의 영혼을 넓혀주고 나를 예수님과 일치시킨다.”
–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메리 제인은 메리와 윌리암 커스테인의 막내였다. 양친의 사망 후 숙모가 메리 제인과 형제들을 클리블랜드로 데려와 사촌과 함께 성장하게 되었다. 후에 이렇게 기록했다. “숙모는 내게 유일한 어머니였으며 나는 숙모를 무척이나 사랑하며 자랐다.” 1944년 성 스티븐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젤가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아스피랑이 되었다. 1948년에 수련소에 입소했으며 메리 진 테레즈라는 수도명을 받았고 2년 후인 1950년에 첫서원을 발했다. 깊은 신심을 가졌던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를 기려 나중에 메리 테레즈로 수도명을 변경했다.

테레즈 수녀는 1956년에 오하이오와 캘리포니아로 파견되어 교사 혹은 교장으로서 33년을 보냈다. 1989년에는 타우젠드 옥스의 관구 본원으로 이전했다.

“기도의 여인”이라는 말은 메리 테레즈 수녀에게 적합한 묘사이다. 킨드레드 하츠 사도직에서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나눔의 기회가 주어지면, 수녀는 이에 첫번째로 참여하는 이들에 속했다. 수녀에게는 “기도하는 또 다른 기회”였다. 관구 기도 사도직의 일원으로서 매일 충실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지향을 위해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메리 테레즈 수녀의 기도의 정신은 우선 본원 성당의 제의담당자로 봉사했던 15년의 시간과, 이후에 살루스의 작은 경당을 담당했던 일에서 양육되었다. 수녀는 이 사도직을 “하느님과 수녀들을 위한 봉사의 이행”으로 보았다. 이는 꽃꽂이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70년이라는 수도 생활의 정점으로써 수녀는 로스 아틀로스에서 했던 30일 피정 – 자신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하느님과 떠났던 시간 – 을 꼽았다. 수녀에게 또 다른 기쁨의 원천은 2000년에 코스펠드에서 수녀회 150주년 경축에 참여했던 일이었다.

메리 제인과 두 명의 오빠가 오하이오에서 다른 가족들과 살고 있었지만 숙모는 그들을 한데 모으는 재간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오빠 에드윈의 죽음은 수녀에게 특히나 힘든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수녀는 미사의 신자들의 기도나 공동체 아침 저녁 기도에 “전세계에 있는 우리 군인들과 고국에 있는 참전 용사들의 안전”을 위한 기도를 거르지 않고 포함시켰다. 매년 미시건에 있는 오빠 윌리암의 가족과 특히 오하이오의 “대” 가족을 방문하는 일은 여름철의 기쁨 중 하나였다.

수녀는 4월 초에 입원했다. 코비드 19으로 인한 제약때문에 수녀들은 테레즈 수녀를 방문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라 레나 고등학교 졸업생인 간호사 한 명이 마지막 시기와, 2020년 4월 7일 화요일 늦은 오후에 수녀가 조용히 하느님이 계신 본향으로 건너갈 때 메리 테레즈 수녀와 함께 해 주었다.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