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클라리스 수녀

마리 클라리스 Marie Clarice 수녀                       ND  4379                PDF Download
(이전 메리 나타나엘 Mary Nathaniel 수녀)
클라리스 헬렌 베이츠 Clarice Helen BATES

미국, 오하이오 샤든 그리스도 왕 관구

출 생:  1928년 10월 23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49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16년 12월 4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관리 센터
장 례:  2016년 12월 9일   오하이오 샤든 관구 본원
매 장:  2016년 12월 9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묘지

당신의 백성을 마음에 품으오리다.”

클라리스 헬렌 베이츠는 윌버트와 메리 마가렛(에벤슈벨러) 베이츠의 여섯 자녀 중 네 째였다. 가족은 클리블랜드에서 당시 넓다랗게 트인 오하이오 파르마 지역으로 이사해 와 아이들은 그곳에서 세인트 챨스 학교에 다녔다. 클라리스의 가족은 여가와 기도, 놀이로 이루어진 클라리스의 성장기에 축복이자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었다. 클라리스의 부모는 누구든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보살핌을 육성해 주었다. 클라리스는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다녀야 했음에도 안셀로(路)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녔다. 1946년에 졸업을 하고 9월 8일에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나타나엘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세례명인 마리 클라리스로 돌아간다.

수녀는 클리블랜드의 성 요한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워싱턴 신학 연합에서 신학 공부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60년 인도로 파견되기 전까지 10년 동안 오하이오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당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수녀는 자말푸르의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가 하면 성 요한 본당학교에서는 교장으로 일했다. 마리 클라리스 수녀는 인도인들, 특히 몹시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다.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일은 아직은 개종시키는 일이 아니라 교육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어서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노틀담 공동체의 가장 큰 목표중 하나는 인도 수녀들이 제대로 교육받도록 하는 일이다.” 수녀는 전례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전례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도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힌두 전례 음악 강좌를 듣기도 했다.

1968년, 마리 클라리스 수녀는 노틀담 인도 선교 행정담당직을 맡기 위해 샤든으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수녀는 자신의 역할을 “지금껏 노틀담 수녀들의 업적에 대해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앞으로 이루어야 할 임무에 대해 설명하는 홍보 역할”이라고 했다. 수녀는 수녀들을 존중하는 많은 은인들과 수녀들이 가족으로 봉사하는 이들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했다. “성모 승천 관구뿐만 아니라 개별 분원들의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점검하기 위해” 3년마다 인도를 방문했다. 수녀의 에너지, 헌신과 인도인들에 대한 사랑은 인도 수녀들에게는 격려와 지지의 근원이 되었다.

28년간 선교 행정담당관으로서 봉사한 후에는 사목 사도직으로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동을 해야했다. 클리블랜드 교구에서 자격을 얻어 오하이오와 노스 캐롤라이나 본당에서 5년간 사도직에 임했다. 2001년, 수녀는 다시 샤든으로 돌아와 솜씨좋은 퀼트 수예가로서 양품점과 전시를 위해 아름답고도 복잡한 퀼트를 고안하고 작업했다. 건강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인도자로서 매일 성경을 가지고 기도 사도직에 헌신했다. 인도에서의 선교와 교육 분야의 노력은 결코 잦아들지 않았으며 인도 수녀들의 방문을 기뻐했다. 마리 클라리스 수녀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비전 안에서 영원히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