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낸시 수녀

메리 낸시 Mary Nancy 수녀             ND 6478              PDF Download

(이전 모린 테레즈 Maureen Therese 수녀)

낸시 앤 페트루첼리 Nancy Ann PETRUCCELLI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46년 8월 20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74년 8월 15일                오하이오 샤든
사 망:                2020년 7월 28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0년 8월 3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 묘지

충실한 하느님의 벗이여, 이제 평안히 가라…”

프레드와 룻(블래이니) 페트루첼리 사이에서 난 낸시와 남동생 빈스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키워지고 꽃피던 행복한 시절을 누렸다. 특히 가족 활동과 여름 방학 여행을 즐겼다. 낸시는 클리블랜드에서 성 필립보네리 본당 초등학교와 클리블랜드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녔다. 노틀담 수녀들을 만나 수도 성소의 씨앗이 심겨진 것은 이 고등학교 시기였다. 낸시는 1971년 8월 22일에 청원자로서 입회하여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전에 여러 해동안 일했다. 착복때는 모린 테레즈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녀는 오하이오 사우스 유클리드의 노틀담 대학에서 역사학 학사학위를, 보울링 그린 주립 대학에서 역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수녀는 사우스 유클리드의 레지나 고등학교와 클리블랜드 중앙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또 28년간 샤든의 노틀담 대성당 라틴 학교에서 사도직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추구했다. 자신의 수업을 흥미롭고 생생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탐독을 했고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수녀는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는 전문 개발 워크숍이나 강좌를 찾아내곤 했다. 수녀는 다른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교육했다.

메리 낸시 수녀는 명료하고 단도직입적인 사람이었다. 때로 쉽게 만족하지 않는 모습은, 수녀가 학생들이 학과목을 배우기를 바랄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을 때까지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수녀는 기대에 대해 진지했으며 진보 하나 하나에 마음을 썼다. 수녀는 배움의 기본요소들과 학습 기술을 수업에 통합했다. 교실을 떠난지 한참 이후에도 학생들이 가치롭게 여겼던 높은 기준을 세우곤 했다.

메리 낸시 수녀는 “연결 사도직”에서 활동하여 이로 기억되고 사랑받았다. 이전 학생들과 동료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지속되는 우정이 맺어졌다. 수녀의 예리한 지력과 기지와 지혜는 많은 새내기 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이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를 기억하도록 고무시켰다. 수녀는 가족을 사랑했고 공동체 수녀들에 대해 마음을 기울였다. 그들을 모임이나 행사에 자주 동반하여 많은 대가족의 일부가 되곤 했다.

메리 낸시 수녀의 갑작스럽고 예기치않은 죽음은 수녀의 가족들과 수녀들, 함께 사도직을 했던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수녀의 지상에서의 삶을 감싸 안으셨고 영원한 생명을 내려주셨다. 이제 수녀가 우리의 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안에서 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