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니 마리 수녀 

리오니 마리 Leonie Marie 수녀                    ND 6680                        PDF Download

리오나다 페트로넬라 자코바 메이그렛 Leonarda Petronella Jacoba MAIGRET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42년 4월 29일        네덜란드
서 원:            1989년 1월 7일          오하이오 톨레도
사 망:            2022년 2월 10일       오하이오 실바니아

와서 나를 따라라

리오나다(리오니)는 2차 세계 대전 중 네덜란드에서 리오나르두스와 폴리나(불테르켄스) 마리그렛의 둘 째 아이로 태어났다. 관습대로 출생 다음날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았다. 공습 경보로 인해 모든 것이 어둡고 조용히 유지되어야 했지만 내부에서는 새로운 출생때문에 기쁨이 대단했다. 리오니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미국 이민을 결심하여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딸 둘과 아들 셋이 있는 가족은 우트레흐트 소스테베르그를 떠나 쇤 가족의 후원아래 오하이오 톨레도로 왔다.

리오니는 영어를 전혀 모른채 톨레도의 센트럴 가톨릭 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서 결국 실바니아 번햄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루르드 대학에 다니면서 노인학 준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간이 지나 보조 족질환 진료사가 되었으며 여러 명의 노틀담 수녀들이 다니는 진료사를 위해 일했다. 리오니가 자신의 질문을 했던 것은 이 수녀들에게였다. “저도 노틀담 수녀가 될 수 있을거라고 보시나요?” 리오니는 1986년, 45세의 나이로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다.

여러 해 동안 리오니 마리 수녀는 노틀담 살루스의 노인 수녀들을 위한 활동 코디네이터이자 도우미로 일했다. 수녀는 노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들을 위한 사도직이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수녀는 다양한 활동을 계획했고 노인 수녀들과 함께 성지나 동물원에 가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수녀는 언제나 잔치를 계획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쾌활한 웃음은,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네덜란드식 발음만큼이나 수녀들에게 즐거움이 되었다.

2007년, 수녀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스 챨스튼의 성 요한 본당 종교 교육 코디네이터 자리를 수락했다. 절대로 새로운 체험을 꺼리는 법이 없었던 수녀는 본당 학교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미술 교사가 되기도 했다. 예술적 재능을 완성하면서 도예와 수채화 수업을 맡았고 갖가지 취미 활동에 연계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리오니 수녀는 유쾌한 웃음과 다른 이들을 포함시키는 재주와 가족들과 네덜란드 조상들에 대한 기쁨을 지니고 있었다. 관대함과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매일의 수도 생활을 살아간다는 것이 수녀에게는 중요했다.

병으로 인해 실바니아의 로자리 케어 센터로 들어와서 호스피스 간병이 필요해 지기 전까지 6개월을 생활했다. 리오니 마리 수녀는 2월 10일, 예수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들었다. “와서 나를 따라라.”

수녀가 영원한 집에서 머무는 기쁨으로 채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