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

마리아 베아트리츠 Maria Beatriz 수녀                ND 4157                    PDF Download

셀리아 돌로레스 플렌츠 Celia Dolores PLENTZ

브라질, 파소 푼도 거룩한 십자가 관구

출 생:          1924년 5월 26일             RS, 에스트렐라
서 원:          1945년 2월 20일             RS, 파소 푼도
사 망:          2022년 11월 19일           RS, 파소 푼도, 상 빈첸트 데 파올로 병원
장 례:          2022년 11월 19일           RS, 파소 푼도, 산타 크루즈 묘지

11월 19일 토요일, 성모 자헌 축일, 눈부시고 화창한 날이 밝아왔다. 성모 신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던 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가, 영원 속에서 함께 사랑과 생명의 충만함을 경축하기 위해 수녀를 불러가신 하느님께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바치던 날을 직접 선택한것 같았다.

셀리아 돌로레스 플렌츠는 죠세 마티아스 플렌츠와 마리아 세릴리아 딜 플렌츠의 16 자녀 중 여섯 째였다. 그 무렵에는 오빠 두 명과 언니 한 명이 이미 사망한 후였다. 셀리아는 어린 소녀였을 때 나오메 토퀘에서 노틀담 수녀들을 만났다. 사심없는 봉사의 증거에 감동을 받은 셀리아는 수도 생활을 하고자 했다. 1943년에 수련소에 입소하면서 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친 자매였지만 2002년에 세상을 떠난 마리아 엘미 테레지냐 수녀도 노틀담 수녀였다. 수도 생활을 하던 두 딸 외에도 플렌츠 가는 구속주회 사제였다가 1973년 사망한 옥타실리오 마리노 플렌츠 신부 아들을 둔 은총을 누렸다.

수도 생활의 초기에 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는 교사였다. 종신 서원 이후, 로마 총본원과 모원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52년간, 우선 브라질 비서로, 그 다음 1970년부터 74년까지  총참사(임시)로, 마지막으로 1974년부터 2002년까지 총비서이자 문서실 담당으로 봉사했다.

베아트리츠 수녀는 보통 수준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에 더하여 포르투갈어, 영어, 독일어, 이태리어에 능통했다. 로마에서의 체류중에는 수녀회 행정부에서 M. 베라 수녀, M. 안셈 수녀, M. 라파엘리타 수녀, M. 죠엘 수녀, M. 수지타 수녀, 이렇게 다섯 명의 총장과 일했다. 얼마나 많은 수녀회 역사를 기록했고 기억했는지! 많은 수녀들이 베아트리츠 수녀를 두고 수녀회와 교회 역사의 걸어다니는 문서실이라 일컬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002년 10월, 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는 거룩한 십자가 관구로 돌아갔다. 수녀는 로마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적었다. “내 마음은 감사로 넘쳐납니다. 그 52년 6개월간 교회와 수녀회의 중심에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사랑하는 하느님, 당신을 찬미하며 찬양하나이다. 수녀회 100주년을 맞이하던 1950년 거룩한 해에, 당신께서는 그토록 많은 이들 가운데서 로마 모원의 첫 번째 브라질 수녀로서 저를 택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은총과 축복을 받았는지요.”

브라질에서는 본원에 머물며 연보를 요약하고 번역을 하고 일반 서신들을 담당했다. 수녀는 독서와 공동체 생활과 기도 시간을 몹시 좋아했다. 사람들의 기운을 돋구기 위해 언제나 시, 재미난 일화, 벌어지고 있거나 지난 일 등 함께 하는 사람들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녀는 2010년 초부터 일상 생활에 도움이 필요해지면서 카사 베타니아로 들어왔다. 2019년에는 와병환자가 되었다. 그래도 세상과 교회, 수녀회와 관구 소식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녀는 지혜의 샘인 마리아 베아트리츠 수녀로부터 샘물을 얻어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던 가족들과 자주 연락했다.

좋으신 하느님의 자취를 안에서 수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많은 수녀들의 이야기와 수녀회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제 수녀가 하느님과 함께 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노틀담 수녀회가 하느님의 좋으심과 섭리적 돌보심의 역사를 계속해서 적어가도록 전구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