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널드 수녀 

메리 로널드 Mary Ronauld 수녀                 ND 4049                    PDF Download

도로시 앤 프로나플 Dorothy Anne FROHNAPPLE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25년 12월 18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46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3년 2월 9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3년 2월 15일                 샤든 부활 묘지

도로시는 버나드와 마가렛(커너스) 프로나플의 네 자녀 중 세째였다. 경제 공황기의 가정 생활은 소박했지만 평화로웠으며 재미난 활동과 모임이 가득찬 나날이었다. 신앙과 강하며 지속적인 가족 유대가 양육되었다. 독일/아일랜드 유산을 소중히 여기며 경축했다. 도로시와 형제, 자매들은 아버지의 수입을 충당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집집마다 돌며 어머니가 손수 만든 퍼지를 판매하러 가곤 했다.

도로시는 성 필로메나 학교에 다녔고 이후에 성 프란치스코 학교에 다니면서 그곳

에서 노틀담 수녀들을 알게되었다. 도로시는 수녀들이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했으며 수도 성소를 깨닫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2년 동안 도로시는 아스피랑으로서 클리블랜드의 노틀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1944년 2월 2일에 청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착복하면서 메리 로널드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교사, 교장, 개인 교사로서 일했던 초등학교 교육 사도직에 대한 수녀의 헌신은 70년간 이어졌다. 수녀는 클리블랜드의 성 요한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성 자비에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메리 로널드 수녀는 대단히 뛰어나며 역동적인 1학년 교사였다. 각 학생과의 진정한 관계를 세우는 수녀의 능력은 은사였다. “난 모든 아이들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했었다. “아이들은 내게 힘을 줘요, 특히 어린 아이들이요.” 수녀는 6년간 워싱턴 DC의 가톨릭 대학교의 캠퍼스 스쿨에서 연구수업 교사이자 학생들을 멘토로서 일했다.

수녀는 넓은 비전과 원활한 학습 환경을 증진하기 위한 혁신적 전략을 가진 교장으로서 20년 이상 봉사했다. 교육적 경험은 학습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육성해 주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는 수녀를 다가가기 쉽고 환대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반영하기를 몹시 바라는 사람으로 보았다. 메리 로널드 수녀는 6년 동안 각 수녀의 삶과 사도직에 관심을 지닌 지역 책임자였다. 수녀는 오랫동안 수녀들이 즐겼던 워싱턴 DC 와 주변 지역의 순례를 주도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녀는 “치열하게 독립적”으로 남아있으려 했기에 건강이 악화되던 마지막 몇 년은 도전이었다. 그래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심화하려는 모든 기회를 사용하며 이를 소중히 여겼다. 수녀는 매일의 기도 안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기쁨과 근심을 품고 있었기에 그들은 수녀에게 힘의 원천이 되었다.

메리 로널드 수녀는 수도 생활과, 자신이 매일 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훌륭한 반향이었다.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